지워지지 않는 마법처럼 신비한..

뭐.. 뭐.. 뭐..야..?


이런 젠장할.


일하다가 아까 잠깐본 블로거는 17살.. 웹 호스팅사업을 시작했단다. 블로그의 내용도 만만 찮다.


범희 누님의 소개로 알게된 새벽편지 사이트에 chan story라는게 있어서 호기심 발동.. 들어가 봤다.


허 참.. 뭐.. 뭐.. 야..!! 이 친구 멋지자나


어쩜 이렇게 멋있는 젊은 놈들이 많은 거냐구


자기가 하고 싶은일을 하기 위한 그의 과정에 정말 박수를 보낸다.


이하 원문 ----------------------------------------------------------


http://www.m-letter.or.kr/chanstory/chanstory.htm


제목: 반추, 그 꿈만같던 100일 간의 기억들을 되뇌이다.


2004년 겨울.
꽤나 쌀쌀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바람을 맞으며 나는 캠퍼스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옷 깃을 파고들던 그때 그 바람처럼 마음 한 구석에서 삶의 갈증을 느꼈다.

10m 남짓 걸었을까?
"그래, 떠나자."

그렇게 나는 거짓말처럼 생각지도 않았던 결정을 너무도 쉽게 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 하고 싶은 것은 해야하고, 하고 싶은 것이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해낼 수 있다라는 삶의 당연한 이치를 너무도 쉽게 믿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친구 재광이가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친구들과 함께 공항까지
배웅을 하던 날, 나는 휴학계를 내고야 말았다.

생각은 행동을 만든다.
나는 내 안에 규칙들을 세우며, 생각들을 구체화시켜 나갔다.

먼저 지금의 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배낭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이 필요했지만, 나에게는 돈도 시간도 없었다.

81년생. 한국나이 25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수능을 다시 보고 학교를 한 번 옮겼다.
덕분에 대학 2학년 휴학중에 아직 군대도 안 갔다온 상태였다.

친구들에게 10개월 동안 동남아시아 11개국 일주를 하겠다는 말을 처음 했을 때,
다들 미쳤다고 했다.
"남들은 모두들 미국이다, 영국이다 어학연수 가고, 인턴사원 알아보고,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는데, 넌 지금 10개월 배낭여행에 준비기간까지 하면 1년이 넘는
시간을 낭비하겠다고? 더군다나 넌 군대도 가야 하잖아. 지금 너 제 정신이야?"

날 걱정하기에 말리려 했지만, 또한 날 잘 알기에 다음에 용기를 주었다.

보다 실질적인 문제는 경제적 상황에 있었다.
당시 나에겐 돈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배낭여행을 위해서는, 더군다나 10개월 이란
기간동안 동남아시아 11개국을 모두 일주하기 위해서는 돈은 당연한 필요수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은 결코 내 꿈을 위한 핑계가 될 수 없었다.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방법으로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는데 첫번째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기업체나 단체로부터 스폰을 받는 것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나는 것 역시 너무도 값진 일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을 걷고 싶었다.
그리고 기업체나 단체에서 스폰을 받기 까지의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마음이 결정되면 나는 그것들을 구체화시켜 나간다.

'누구도 쉽게 자신의 돈을 내어주진 않을 것이다. 과연 어떻게 하면 스폰을 받을 수 있을까?'
결론은 간단했다. 스폰을 받기 위해서는 나 역시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1년 반 가량 인터넷 교육 컨텐츠 개발 서비스 밴처사업을 했었고,
다행히도 그 후 기자생활을 하고 있던 터였다.

머리속에서는 기획안의 틀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매일 그것들에 살을 덧 붙여 나갔다.

우선 나는 나의 여행기와 사진, 기사를 연재할 매체를 커넥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기획안 들을 보냈으며, 그 결과 7군데의 큰 매체들에
글을 실을 수 있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영상물을 위해 몇 몇 프로덕션들과 회의를 했고 결과, 제이스터 네트워크 프로덕션과
현지 촬영을 계약 하였다.

일이 어느정도 진척되었다고 느꼈을 때야 비로소 나는 부모님께 내 계획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언제나 그렇듯이 차분히 내 이야기를 다 들으신 후 하신 말씀은, 외국에 나가고 싶으면
어학연수를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학연수보다 내가 뜻을 품고있는 동남아시아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직접
경험하고 싶다는 뜻을 말씀드렸고, 늘 그렇듯이 부모님께서는 나의 결정을 존중해 주셨다.

지금까지 나의 부모님은 내 기억속에 한번도 "안돼!"라고 말씀 하신적이 없다.
내가 느끼는 부모님의 교육 철학은 "네 인생은 네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며, 그 결정에
대해서는 결코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NGO 단체들과 연락을 취해 나갔다.
10개월이란 기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지만, 단지 여행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과
가까이에서 만나고, 함께 먹고, 자고, 부대끼고 싶었기에 생각한 것이 바로 NGO 였다.
NGO 단체에 들어가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작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봉사하고,
우리나라 NGO가 현지에서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취재해 한국에 알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몇 나라를 제외하고 각 나라마다 한 두 군데씩의
NGO 단체들과 연결이 되었다.

일이 여기까지 진행되자 본격적으로 기획안 만드는 일로 넘어갔다.
기획안의 기본 틀은 같았지만, 기업체 혹은 단체의 성격에 맞게 모두 10여개 이상의
버전으로 만들었다. 기획안의 분량이 너무 많아도 담당자 책상 옆 폐품 상자로 직행할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에 10페이지 분량에 내 소개와 이번 프로젝트의 내용,
기대되는 효과, 진행 단계와 필요 사항 등을 모두 담아냈다. 그리고 "자세한 내용은
세부 기획안을 통해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덧 붙였다.
만약, 세부 기획안도 한 부 보내달라는 말이 나오면, 이것은 이미 절반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만들어진 기획안을 100여 곳의 기업체와 단체들에 제안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 일은 매우 힘들고 이내심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먼저 기업체나 단체의 고개 센터 등에 전화를 걸어 간단한 내 소개와 기획안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리고 관련 부서와의 연결을 부탁했다. 그럼, 관련 부서의 아마도
말단 사원일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다시 내 소개와 기획안 설명을 한 후, 담당자와의 연결을 요청해야 했다.
담당자와 연결이 되면 또 다시 내 소개와 기획안 설명을 하고,
"기획안 한 부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이메일과 연락처 부탁드립니다."
라고 해서야 어렵게 기획안 한 부를 제안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도 그나마 빠른 일처리에 속했다. 담당자는 자리에 없기 일 수 였고,
보내진 이메일 중에서도 일주일이 지나도록 확인되지 않은 것이 많았다.

당시 기획안 만드는 작업과 제안하는 작업은 목동에 작업실에서 주로 이루어 졌는데,
내 미니홈피에 이런 글과 사진이 올라 간 것을 보면 그때의 내 일과를 짐작할 수 있다.





2박3일 집에도 안가고 계속 이곳에 있었다.
초췌해진 이 피부와 피폐해진 내 정신은 jayster가 건내는 각종 종합 비타민 3알로는
복구될리 만무했다.
수염도 기르고 폐인의 모습으로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더니 문득 어디선가 내 머리를
포멧하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 그분이 오신것일까.........
내일은 이곳을 탈출해야 겠다.
2005.04.23

젠장, 지난 일주일 동안 하루빼고 여기서 살았다.
2005.05.01

여기까지 작업을 하는 동안 처음 예상대로 6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프
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6개월이란 시간동안 때론 힘들고, 마음대로 안되고,
그래서 정말이지 다 때려치우고,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보다 두려웠던 것은 문득, 내가 지금 옳은 길을 가고 있느냐는 물음이 찾아 올 때였다.
나는 내 꿈을 쫒아 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날개를 펼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된 마냥 내 날개는 남들의 날개와 달라 보였다.
그것이 때론 나를 덜컹 겁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리 큰 문제도, 그리 오래 느끼는 감정도 아니었다.

나에겐 확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날개를 펴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닌, 한 마리의 멋진
백조가 되어 있을 것이다.

2005년 6월 27일...... 나는 꿈을 쫒아, 그리고 나를 찾아 길을 떠났다.
10월 4일 오늘...... 꿈을 쫒아 온지도 어느덧 100일째.

나는 한국에서 100발짝 멀리 온것이 아니라, 내 꿈에 대해 100발짝 더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지난 100일 동안 나는 필리핀, 미얀마, 태국, 라오스, 베트남을 여행했으며,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였다.

뒤돌아 보면 수 없이 많은 기억의 조각들이 내가 걸어온 흔적들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나를 넘어섰다."라는 어느 광고 문구처럼, 나는 나를 넘어서기 위해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