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마법처럼 신비한..

원글 : http://kr.fun.yahoo.com/NBBS/nbbs_view.html?bi=1201&mi=785994

에효..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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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오랜만에 1년차(레지던트) 임선생의 허락을 얻어 인턴 숙소에서 눈을 붙이고 있었다.
인턴이라면 다 그렇듯 나 역시 누적된 수면 부족으로 온몸이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그리하여 침대에 쓰러지자마자 곧 혼곤한 잠의 늪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런데 잠결에 이명처럼
아득하게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을 뜨고 전화기를 찾았다. 그것은 인턴의 본능이었다.
새벽 3시 전화기는 성난 개처럼 요란하게 짖어대고 있었다.

“여보시오.”

내 목소리에는 졸음과 반항기가 묻어 있었다. 모처럼 곤히 자는 사람을 또 깨우느냐는 항변이었다.

“소아과 인턴 선생님이죠.”

“그런데요.”

“3년차 선생님 긴급호출 입니다.”

간호사의 목소리는 차가운 물처럼 내 목덜미를 타고 흘러 내렸다. 그녀는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음~” 저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켜 가운 단추를 잠갔다. 감히 3년차 선생의 호출을 거부할 수 있는 인턴은 이 세상에 없다.

“내 팔자에 편히 잠자기를 고대했다니….”

환자는 병동에서 극성파 아버지로 유명한 박인철씨의 네살바기 아들 지수였다. 하늘같은 3년차 선생은 내게 배깅을 하라고 지시하고 ICU(중환자실) 환자들을 봐야 한다며 가 버렸다. 지수는 며칠 전부터 폐렴으로 인한 호흡곤란과 심장마비 증세를 보여 인튜베이션(기관 내 삽관)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배깅은 그 튜브에 연결된 고무백을 규칙적으로 눌러 인공호흡을 시켜주라는 지시였다.

얼굴이 석고상처럼 굳어 있는 지수 아버지는 차마 보기 딱할 정도였다. 그는 잠시도 아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다해 아들을 간호하고 있었다. 아이는 위독한 상태였으며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배깅을 시작했다.

1시간이 흘렀다. 무거운 쇳덩이가 눈꺼풀을 내리누르는 것같은 졸음을 참아가며 배깅을 계속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아이는 선천성 심장병에 백혈병까지 있었다. 그래서 수술도 하지 못하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다가 1년 전부터는 우리 대학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다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없었으며 아버지가 주로 간호를 했고 고모라는 아주머니가 가끔 다녀가고는 했다.

지수 아버지는 악명 높은 보호자였다. 얼굴은 얽었으며 군대에서 다쳤다는 한쪽 다리를 절고 있는 40대 사내였다. 오랜 노동 생활로 인해 투박한 모습이었으나 지수는 눈이 크고 피부가 하얗고 귀공자처럼 예쁘게 생겼으며 영리했다. 그래서 간호사들도 지수는 예뻐했지만 그 아버지가 보통 들볶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툭하면 쫓아왔다. 아이가 열이 난다, 기침을 했다, 토했다, 수액이 안 들어간다, 잘 안 먹는다, 소변을 못 본다, 주사는 언제 놓아 주느냐 등등…. 별것도 아닌 일로 바쁜 인턴을 불러 세우는 것이었다.

“이 병원에 환자가 지수 하나가 아니잖아요. 그만 좀 얘기 하세요”, “가 계세요. 어떻게 아저씨 아들만 하루 종일 보고 있어요”, “저 점심, 저녁 다 굶었어요.”

나나 간호사들이 핀잔을 하고 성질을 부려도 막무가내였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한 것이 없었다. 필사적이었다. 간호사들과 싸움도 수없이 했다. 간호사들은 아예 표독스러운 ‘승냥이 아저씨’라고 불렀다.

“똑바로 해.”

1년차 선생이 내 등을 쿡 찌르고 갔다.

나는 깜짝 놀라 백 잡은 손에 힘을 넣었다.

2시간이 흘렀다. 이제 졸음은 달아났지만 격심한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3시간이 흘렀다. 손바닥 껍질이 벗겨져 나가는 것처럼 손바닥에 불이 났으며 손가락이 아파왔다. 하지만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있는 지수 아버지와 수시로 왔다 가는 1년차, 3년차 선생과 간호사들 사이에서 나는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지수 아버지가 물수건을 갈아주어야 한다며 나갔을 때 아이가 잠시 몸을 비틀며 눈을 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지수는 말간 눈빛으로 무언가 찾는 듯 하더니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나는 배깅을 계속하였다. 물수건을 갈아 가지고 온 지수 아버지에게 아이가 잠시 눈을 떴었다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잘못 얘기했다가는 더 극성을 부릴 것이었다.

4시간이 지나고 5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탈진 상태였다. 지겨웠다. 어깨와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 같았다. 날이 밝은지 오래였다. 할 일이 태산같이 밀려 있었다. 수많은 입원환자들의 CBC채혈 IV(정맥주사) 검사 결과 확인, 차트 정리, 오더 처리 정리, 회진 준비 등.

그런데 이 짓을 계속하고 있으니. 아침은 물론이요, 점심, 저녁까지 굶고 또 날밤을 새우게 될 판이었다. 내가 할 일을 누가 대신해 줄 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이미 소생 가능성이 없다면 이 지루한 게임이 빨리 끝나고 모든 장비가 철수되기를 나는 바랬다. 어차피 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왜 이런 무의미한 시술을 계속 한단 말인가. 아이가 죽을 것이면 빨리 죽어서 일찍 끝나는 것이 모두에게 유익이 아닌가. 나는 백 잡은 손에 힘을 빼고 그저 건성으로 눌러댔다. 아이는 이미 숨을 거두었는지도 모른다. 보호자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배깅을 계속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차 선생이 ECG(심전도)를 찍어 가지고 갔다.

“제대로 똑바로 해.”

3년차 선생은 내게 다시 주의를 환기시키고 갔다. 인턴은 어디 무쇠 강철 기계란 말인가. 나도 쓰러질 지경이었다. 손가락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윗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는 힘을 넣어 배깅을 했으며 보는 사람들이 없을 때는 그저 형식적으로 기계적으로 하는 체 했다. 빨리 끝나기만 바라며 배깅을 했다.

마침내 아침 10시가 되었다. 무려 7시간 동안 배깅을 한 것이다. 그리고 10시가 조금 넘어 취프(4년차 수석전공의) 선생과 담당 스탭(교수)이 왔다. 담당교수는 아이를 다시 면밀히 청진해 보고, 후래쉬로 눈의 동공 반사를 보고 심전도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익스파이어(사망) 선고를 내린 후, 고개를 숙인 채 어두운 얼굴로 내려갔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이의 몸에 붙어 있던 모든 기계장치들과 수액병, 카테터(도뇨관) 등이 일시에 제거됐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지수 아버지의 손에서 툭하고 물수건이 떨어져 내렸다. 이제 그는 눈물도 말라 있었다. 아이는, 침대 위에 축 늘어진 알몸의 시신으로 누워 있었다. 지수 아버지의 하얗게 소금꽃핀 뺨 위로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허망함이었다. 그의 입술은 바싹 마르고 갈라져 있었다.

병동에는 침묵이 흘렀다. 나는 허탈했다.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끝나버린 것이었다. 죽음은 무참한 단절이었다. 이 세상과의 단절이었고 아버지와 아들의 단절이기도 했다. 벌써 오더리(병원 잡일을 해주는 남자직원) 아저씨들이 하얀 시트를 가지고 와 덮으려고 했다. 시신을 영안실로 내리기 위해서였다.

“자, 잠깐만요”

지수 아버지가 제지했다.

“선생님, 아들을 제가 집으로 데려 가겠습니다. 잠깐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러더니 핏기 없는 지수의 창백한 이마에 아버지의 부르튼 입술이 서서히 내려 앉았다. 하얀 뺨과 푸르스름한 입술 위에도, 그리고 하얀 뺨 위로 구슬처럼 ‘툭’ 하고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태어나서 한번도 운동장을 마음껏 뛰어본 적도, 장밋빛으로 빛나본 적도 없는 아들이었다. 행여나 깨질세라 소중히 끌어안았다.

나는 부끄러웠다. 목이 메어왔다. 그가 속으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병동은 침묵으로 고요했으며 간호사들도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간호사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수아빠 너무 딱하다….”

얼굴이 얽은 데에다가 다리까지 절어서 연애는 꿈도 못 꿔보고 막노동판으로 전전하며 돈을 모아, 40살이 넘어 중매로 결혼했다는 것이었다. 지수 엄마는 지수를 낳은 직후 산후출혈로 죽었으며 아버지가 혼자 키웠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고생 고생해서 모은 돈도 지수하나 살려보려고 병원비로 다 날렸고 그래도 마지막 한 가닥 지수에게 희망을 걸었는데….

지수 고모가 커다란 가방에 지수의 소지품을 정리해서 가지고 나왔다. 고모도 쉴새없이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한참을 흐느끼던 지수 아버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들, 간호사 아가씨들 그동안 너무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랜 세월 노동으로 굳은살이 박힌 손등을 들어 눈물을 훔쳐낸 후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오더리 아저씨가 지수의 몸에 흰 시트를 덮어주었다. 나도 그저 꾸벅하고 지수 아버지에게 답례를 했을 뿐 아무 할말이 없었다. 이윽고 그가 아들을 끌어안고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멀어져 갔다. 고모와 오더리 아저씨들이 그 뒤를 따라갔다.

수고했다며 잠시 쉬고 오라는 3년차 선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도망치듯 병동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인턴숙소로 올라와 침대 모서리에 앉아 허탈한 탄식에 젖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오더리 아저씨였다.

“인턴 선생님, 이거 지수 아버지가 선생님께 전해 드리라더군요. 그리고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고 어제 밤에 고생 많이 하셨다고 고맙다는 말씀 꼭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음료수 한 박스와 봉투를 전해준 오더리 아저씨가 힘없이 돌아갔다.

나는 흰 봉투를 펼쳐 보았다. 만 원짜리 지폐가 가득 들어 있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은, 침대에 쓰러져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아도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의학의 한계를 얘기하기 전에 최선을 다했는지 부끄러웠다. 환자와 보호자는 나를 신뢰하고 있었는데 내가 좀더 열심히 했더라면, 좀더 정성을 기울였더라면 세상에는 기적도 있는 것인데 지수가 살아났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아이가 빨리 죽기를 바랐던 나의 비겁하고 사특한 마음을 용서 할 수가 없었다.

내게 진정 의사의 자격이 있는가.

밤새 안절부절하며 물수건을 만들어다 아들의 이마를 닦아주던 지수 아버지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지금쯤 아내와의 추억이 투명한 빛살처럼 떠도는 집안 어느 구석엔가 지수를 뉘어놓고 그 작은 몸뚱어리를 정성껏 닦아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왔다. 내게 이런 돈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돈 봉투는 병원 사무처를 통해 심장병 어린이 돕기 재단에 보내 달라고 맡겼다. 그리고 병원 앞 화원에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서 지수가 누워 있던 침대 머리맡에 가져다 놓았다. 침대 바닥에 무언가 떨어져 있었다. 지수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헬리콥터였다. 비행기가 나는 흉내를 내며 까르르 웃어대던 지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헬리콥터를 장미꽃 옆에 놓았다. 지수는 하늘로 올라가 천사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2주가 지났다. 병원의 바쁜 시스템 속에서 이제 지수에 대한 아픔도 서서히 아물어 가고 있었다. 그즈음 지수 고모가 찾아왔다. 지수의 사망 진단서를 끊으러 왔다는 것이었다. 고모 역시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이었으며 우울해 보였다. 나는 1년차 선생의 지시로 진단서를 대필해 주고 있었다.

“지수 장례는 잘 치렀나요? 화장을 하셨나요?”

내가 물었다.

“아니요, 지수 아빠가 어린 지수가 얼마나 뜨거워하겠냐며 엄마 곁에 묻었어요.”

“그랬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 아빠는 잘 지내시나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저에게 돈까지 주고 가시다니 너무 송구스럽군요.”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께서 열심히 치료해 주셨는데요.”

“그래 어디 직장에 나가시나요?”

그러자 고모는 손수건을 꺼내더니 눈물을 닦아냈다.

“지수 아빠는 지수 묻고 사흘 만에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예….”

나는 온 몸이 그대로 굳어 버리는 것 같았다.

“지수 아빠가….”

“지수 없는 세상 너무 쓸쓸하고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다며 지수 곁에 함께 묻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생각하면 불쌍한 동생이에요”

나는 어떻게 진단서를 써주고, 고모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기억이 없다. 나는 그대로 어두컴컴한 인턴 숙소로 올라와 문을 걸어 잠그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두 사람을 죽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물어가던 상처는 더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불행하게 떠난 한 가족을 생각하며 나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혼신의 힘으로 최선을 다했더라면 이렇게까지 가슴이 아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진정 지수 아빠만큼, 환자인 지수에게 나는 사랑을 쏟았는가’

모든 환자들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 때, 그 때 비로소 나는 의사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병동에서 또 나를 호출하고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멀리 히포크라테스 흉상의 두 어깨가 저녁 빛에 젖어 있었다. 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구절들을 가슴 속에 새기고 또 새겼다.

“나는 내 능력을 다하여 환자를 위할 것이며…
...나는 순결과 경건으로 나의 생애를 보낼 것이며 의술을 시행할 것이다.
…나는 순결과 경건으로 나의 생애를 보낼 것이며…”■

이 내용을 이해하는 분들께는 고생 많으시네요~ ^^ 홧튕. !!


요구 사양은 프로그램을 완성한 후에 추가된다.
기본 사양은 완성품을 고객이 보고 나서 결정된다.
상세 사양은 사용자가 프로그램을 사용해 본 이후에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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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설계에는 두 개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결함이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분명한 결함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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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를 죽이기 위해서는 칼이 필요없다. 프로그램의 요구조건을 3번만 바꾸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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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객들은 물과 기능추가를 공짜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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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설계는 한 명의 천재보다 세 명의 범재를 요구한다.
나쁜 설계는 백명의 범재보다 한 명의 천재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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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시간만 있으면, 그 어떤 시스템이라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웃어라. 그 기회는 영원히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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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기 때문에, 건강을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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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개발실의 창문은 안 열립니다. 그 이유는 옛날에 한 프로그래머가 그 창문에서··



어디선가 본..

 

원글 : http://kr.fun.yahoo.com/NBBS/nbbs_view.html?bi=1201&mi=775864&page=

그리움 이란 단어는 그리운 마음을 참 잘 나타내는것 같다.
그리움에서 가슴이 아려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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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스닷컴과 SK텔레콤·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펼치고 있는 '올바른 휴대전화 사용문화 만들기'
캠페인의 수기 공모전에서 1등으로 당선된 글을 보고,
한 독자가 감동의 편지를 보내왔다.
78세 할아버지인 이 독자는 수기 당선작
'하늘나라 시어머니가 문자를 안 받아'의 작가
손현숙씨에게 전해 달라며
10만 원 권 우편환도 동봉했다.
손현숙씨의 당선된 글과 독자의 글을
차례로 적어 소개해 봅니다.


하늘나라 네 시어머니가 '문자'를 안 받아 !
(1등으로 당선된 손현숙씨의 글
)


내게는 핸드폰 두 대가 있다.
한 대는 내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나라에 계신 시어머님 것이다.
내가 시부모님께 핸드폰을 사드린 건 2년 전.
두 분의 결혼기념일에 커플 핸드폰을 사드렸다.
 
문자기능을 알려 드리자 두 분은 며칠 동안
끙끙대시더니 서로 문자도 나누시게 되었다.
그러던 올 3월 시어머님이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셔서 유품 가운데 핸드폰을
내가 보관하게 되었다.

그러고 한 달 정도 지날 무렵.
아버님이 아파트 경비 일을 보시러 나가신 후
'띵 동'하고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어머님 것이었다."여보, 오늘 ‘야간 조’니까
저녁 어멈이랑 맛있게 드시구려."

순간 난 너무 놀랐다.혹시
어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치매증상이
오신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함이 몰려왔다.
그날 밤 또 문자가 날아왔다.

"여보, 날 추운데 이불 덮고 잘 자구려. 사랑하오."
남편과 나는 그 문자를 보며 눈물을 흘렸고
남편은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아버님은 그 후
"김 여사 비 오는데 우산 가지고 마중 가려는데
몇 시에 갈까요?
아니지. 내가 미친 것 같소. 보고 싶네"라는 문자를 끝으로
한동안 메시지를 보내지 않으셨다.

그 얼마 후 내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어미야, 오늘 월급날인데 필요한 거 있니?
있으면 문자 보내거라."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네. 아버님. 동태 2마리만 사오세요" 하고
답장을 보냈다.

그날 저녁 우리 식구는 아버님이 사 오신 동태로
매운탕을 끊인 후 소주 한 잔과 함께
아버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아직도 네 시어미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그냥 네 어머니랑 했던 대로 문자를 보낸 거란다.
답장이 안 오더라.
그제야 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걸 알았다.

모두들 내가 이상해진 것 같아 내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던 것도 안다. 미안하다."
그날 이후 아버님은 다시 어머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지 않으신다.

하지만 요즘은 내게 문자를 보내신다.
지금 나도 아버님께 문자를 보낸다.
"아버님. 빨래하려고 하는데
아버님 속옷은 어디다 숨겨 두셨어요?"

손현숙/9월 23일 중앙일보

78세인 나를 울린 `문자 메시지
(손현숙씨의 당선된 글에 대한  독자의 글)

수기를 보고 저는 너무 감동받았습니다.
현숙씨 가정과는 아무 연고도 없는 타인이어서
실례가 되지 않을까도 싶었지만
아름다운 마음씨에 감동해 편지라도
한 장 보내고 싶었습니다.

저는 78세이며 아내는 75세 된 노부부입니다.
저희는 현재 2층 단독 주택에 1층 점포를 운영하며
아무런 부족함 없이 살고 있습니다.
3남 1녀의 자식을 두고 우리 역시 며느리가
셋이나 되어 수기를 본 후
자연스럽게 며느리들을 떠올려 보았답니다.

현숙씨의 글 중에서 마지막 구절
'아버님, 빨래하려고 하는데
속옷은 어디에 숨겨 두셨어요' 부분은
너무나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현숙씨 아버님은 정말 천사 같은
착한 며느리를 두셔서 행복하시겠습니다.
효부상을 드린다면
정말 현숙씨가 적격이라고 생각됩니다.

현숙씨 아버님의 정이 듬뿍 담긴 말씀과
행동들은 같은 노인들에게도
귀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현숙씨 아버님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수기의 그 내용은 저희 부부의 지난 세월 역시
반추하게끔 해주었습니다.

아버님은 정말 잉꼬부부셨던가 봅니다.
아울러 가정 내에서도 며느님과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실지 충분히 헤아려집니다.
고인이 된 아내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그 애틋한 마음에
가슴이 시렸습니다.

생전에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 홀로 되신 아버님께도
깊은 동정심을 가지게 됩니다.
저도 휴대전화라는 물건이 그토록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현숙씨, 아버님과 함께 삼겹살에
소주파티라도 하시라고 자그마한 성의를
같이 동봉해서 보냅니다.

결례일 수도 있지만 좋은 글에 감동받은
어느 한 사람의 호의라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멀리서 현숙씨 가족끼리 오붓하게
파티하는 모습을 상상하겠습니다.
그럼 현숙씨 가정의 행복과 평안을 빕니다.

실화라고 하는 얘기들을 보면 실화 같지 않은 얘기가 많은데, 이 글은 정말 실화같고 그 느낌이 꽉 차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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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 : http://kr.fun.yahoo.com/NBBS/nbbs_view.html?bi=1201&mi=778685&page=

이 이야기는 어느 의사가 겪었던 실화라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 내가 진주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공사장에서 추락 사고로 뇌를 다친 26살의 한 젊은이가 새벽에 응급실로 실려왔다

이미 그의 얼굴과 머리는 심하게 손상되어 원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고

의식은 완전히 잃은 후였다

서둘러 최대한의 응급 조치를 했으나 살 가망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식물인간이 된 상태나 마찬가지인 그가

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날 아침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계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나의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규칙적이고도 정상적인 심장 박동을 나타내던

ECG(Electrocardiogram 심전도) 곡선이

갑자기 웨이브 파동(V-tach)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힘차고 반복적인 정상적인 인간의 심장박동에서

점차 약해지며 그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그것은 곧 죽음이 가까이 옴을 의미했다

보통 이러한 ECG곡선이 나타난 이후

10분 이상을 살아있는 이는 나는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운명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느낀 나는

중환자실을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환자가 운명할 때가 되었으니 와서 임종을 지켜보라고 일렀다.

이미 가족들은 환자에 대한 어떠한 조치(응급 심폐소생술)도 포기한 채

그의 죽음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젊은이의 부모님과 일가 친척인 듯한 몇몇 사람들이 슬피 울며

이미 시체나 다름없이 누워있는 그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중환자실을 나왔다

간호사에게는 심전도 파동이 멈추면

곧바로 영안실로 옮기라고 일러두었다

다른 환자를 보고 잠시후 다시 그 중환자실을 지나치면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시간이 지난 아직도 그의 심장 박동이

느린 웨이브 파동 ECG를 그리면서 살아있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신기하게 생각되어 지면서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날 오후는 쏟아지는 응급 환자들을 돌보느라

더 이상은 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응급실은 거의 매일이 전장의 야전병원같은 분위기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는둥 마는둥 그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웬지 갑자기 생각이 들어 다시 그 중환자실을 가보았다.

물론 지금쯤은 아무도 없는 빈 침대이거나

다른 환자가 누워있으리란 당연한 생각으로였지만

웬지 그의 생각이 머리속에 떠나지 않음은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었다.

방에 들어선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그가 있었다

더없이 나약하지만 끊이지 않는 ECG곡선을 그리며

그의 영혼은 아직 거의 몸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웬지 이 세상에서 그가 쉽게 떠나지 못할 그 어떤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이것은 과학적, 의학적 상식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였다.

나는 의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어떤 존재를

그 순간 무의식중에 감지했던 것 같다.

하루가 다시 그렇게 지나고

그의 심전도가 웨이브 파동을 그린지 장장 이틀이 지났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중환자실에 가보았다.

그의 신체는 죽은 것과 다름없었지만

영혼은 어떠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더없이 미약하게나마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고 있었다.


심전도를 나타내는 모니터 화면이 그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고

나의 예사롭지 않은 느낌역시 그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젊은 여인이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이제까지 보호자 중에 없었는데,

마치 멀리서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온 듯 했다.

젊은이의 애인인 듯 했는데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제대로 환자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창백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나는 한 옆으로 비켜주었다.

젊은 여인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까스로 침대 옆에 섰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그의 심전도 파동이 멈추었다.

모니터 화면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던 웨이브 파동이 한순간 사라지고

마치 전원이 꺼진 것 같은 한줄기 직선만이 화면에 나타났다.

이틀간 미약하게나마 뛰어왔던 그의 심장이 바로 그때 멈춘 것이었다.

내가슴은 순간 서늘해지면서 웬지모를 거대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젠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난 그와

그의 곁에 남겨진 여인을 두고 나는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임종 소식을 전하고

나는 보호자 중의 한 사람에게

방금 온 그녀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내게는 그녀가 그의 삶을 오늘까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장시킨 어떤 존재로까지 여겨졌던 것이다.

그녀는..

결혼한 지 3개월에 접어드는 그의 부인이었고

뱃속에 아기를 임신중이었다.

놀라움과 마음 속 깊숙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옴을 느끼며

나는 그 순간 내가 해야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야기해 주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당신과 뱃속의 아기를 만나기위해

그가 얼마나 그 오랫동안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지

얼마나 힘겹고 가슴 아픈 영혼의 기다림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부인과 그의 아기에게 전하는

그의 이 세상 마지막 메세지라고

그것은 바로 사랑의 작별 인사라고

듣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 넘치는 눈믈을 바라보며

나는 두려움과 함꼐 어떠한 경외심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한 한 영혼이

바로 우리 곁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생생히 느꼈고 경험했다.

그리고 그 존재를 이끌어주는 가장 큰 힘이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 역시

우리에게 가장 없어서는 안될

영혼과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의사의 길에 들어서는 후배들에게

나는 요즘도 이 이야기를 해주곤 합니다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적어도 10명이상은 되어야 인생에 행복감을 느낀답니다.
-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491866

영국 노팅엄 대학교 연구팀은 남녀 1,700여 명을 대상으로 친구 숫자와 행복도와의 관계를 조사했습니다.그 결과, 친구가 적어도 10명이 돼야 행복함을 느꼈는데요.

또한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도가 더 높았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친구가 2배나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오래된 친구가 좋은 친구라는 사실과는 다르게 새로운 친구와 더 큰 행복을 준다고 밝혔습니다.


단 한잔의 술도 뇌크기를 감소시킨다.

-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8/10/27/200810270384.asp

보건복지가족부 선정 알코올 질환 전문 병원인 다사랑병원의 이무형 원장은 “알코올은 아무리 소량이라도 뇌 신경세포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은 알코올 질환 전문가들에게는 익히 정설처럼 굳어진 이야기”
컴퓨터를 장시간 사용할때는 눈운동을 해주세요.
- http://www.fnnews.com/view?ra=Sent0901m_View&corp=fnnews&arcid=00000921464000&cDateYear=2008&cDateMonth=10&cDateDay=27



바나나에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있데요.
- http://www.kormedi.com/news/article/1186932_2892.html

“바나나는 다른 과일에 비해 탄수화물을 많이 포함해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무늬만 과일’”이라고 설명했다.
장수의 3대 비결은 "질높은 수면, 신체활동, 전통적 식습관" 이랍니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3&sid2=241&oid=003&aid=0002347141
“장수를 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3끼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특히 매일 콩류(두부,된장 등)와 채소류 반찬과 매끼 국이나 찌게를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교수는 "뼈째먹는 생선이나 어육류, 유제품을 일주일에 3회이상, 해조류(김, 미역 등)와 과일류를 일주일에 2~3회 이상 먹어야 한다"면서 "대신 술과 담배를 절제하고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즈니스 캐주얼의 3대 법칙
-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3110&g_serial=367358

1. 콤비를 즐겨라
가장 보편적인 네이비와 그레이 수트, 단 두 벌이면 최소 네 가지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특히 그레이 수트는 네이비, 카키, 검정 어느 색에도 잘 어울리는 만큼 콤비로 적극 활용 가능하다. 단, 상하의를 같은 색과 소재로 매치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상농하담(上濃下淡) 또는 상담하농(上淡下濃)이 기본 연출법이다. 재킷이 네이비 색상이라면 바지는 그레이 색상으로, 재킷이 그레이 색상이면 바지는 네이비 색상이 제격이다. 또한 상의나 하의에 패턴이 들어갔다면 다른 아이템은 패턴이 없는 걸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


2. 니트류를 적극 활용하라
니트류는 여름을 제외한 어떤 계절에도 활용이 가능한 만큼 브이넥, 터틀넥, 카디건 정도는 필수로 구비해 두는 것이 좋다.

3. 액세서리로 무게감을 더하라.
신발의 경우 굳이 옥스포드화를 신을 필요는 없다. 로퍼 스타일의 컴포트 구두나 스니커즈를 신는 것이 한결 멋스럽다. 색상은 검정색이나 갈색이 어디에든 무난히 잘 어울린다. 다만 정장처럼 구두와 벨트 색상이 같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한국에 거창고등하교는 조금 특별한 데가 있는 것 같다. 이 학교에서 매년 졸업생들에게 주는 직업 선택의 십계명을 소개한다. 좀 특이하다는 것이, 틀린 얘기라는 것이 아니라 맞는 얘기를 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대로 직업을 선택하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1. 월급이 적은 곳을 선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선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선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은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선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말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예수께서는 자신의 길을 가시면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 보는 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자신은 사람들이 왕으로 받들고 추종하는 곳이 아닌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고난의 길을 선택하였다. 불황이라 하여 일자리가 없다 하나 이 기준들에 비추어 본다면 널려 있는 것이 일자리일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온 목적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함이 아니다. 하늘로부터 받은 소질과 재능을 가지고 일하기 위해서 왔다. 이 소질과 재능에 맞게 일을 택하라. 이것이 소명을 찾는 길이다.

 

인간의 직업이나 생사 문제는 나뭇가지의 잎과 같아서 나무를 위하여 태어났다가 푸르게 일하고 가을이 되면 다시 낙엽으로 죽어 나무 뿌리를 거름지게 하는 것 뿐이다. 살아도 나무를 기르고 죽어도 나무를 기른다. 살아간다는 것은 나무를 기르기 위한 수단이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생사는 생사에 맡기고 나는 다만 길을 가고 마음을 닦고 인격을 기를 뿐이다. 지금 나의 직업은 생업인가? 사업인가? 소명인가?

 

출처: 모 교회 주보에서

[출처] 직업 선택의 십계명|작성자 보쉬조아

[ 관련 기사 ]

중앙일보 2006. 1.23

원글 : http://www.cyworld.com/fmpeople2/264321



라식렌즈를 통한 부정난시 해소
http://lasiklens.co.kr/lasik/main01_7.html

라식, 라섹 부작용의 종류와 원인 및 예방법.
http://manubase.egloos.com/1762411

얼마전부터 눈이 아프고.. 두통도 자주 발생..
그러다 급기야.. TV와 컴퓨터를 볼때 심한 안구통증과 함께
초점이 맞지 않는 문제가 생겨 안경점에 들렸더니 난시라고 합니다..
그래 궁금해서 난시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이곳에 몇개 올립니다.

난시(Astigmatism)

정의

모든 방향의 굴절력이 일정치 않고 눈의 경선에 따라 차이가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평행 광선이 한 점으로 맺히지 않고, 두 점 혹은 그 이상의 초점을 갖는 상태를 난시라 한다.

원인

난시는 크게 정난시와 부정난시로 나뉜다. 정난시는각막의 커브의 정도가 방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며, 부정난시는 눈의 염증이나 상처(각막반흔, 원추각막, 백내장초기, 원추수정체 등) 등이 원인으로 각막의 표면이 울퉁불퉁해져 일어난다.

치료

정난시의 경우 원주렌즈의 안경으로 교정한다. 먼저 근시나 원시에 대하여 구면렌즈로 교정한 후 필요한 난시도를 원주렌즈로 교정하게 된다. 그러나 고도의 근시나 원시가 있는 환자에게는 난시교정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정난시의 경우 눈의 염증이나 상처 등이 원인이 되어 각막의 표면이 울퉁불퉁해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완전히 교정하려면 콘택트 렌즈를 사용한다. 그밖에 수술로 교정할 수도 있는데, 그 방법으로는 다이아몬드 칼로서 각막 주변을 횡절개(루이즈법) 한다든가 또는 엑시머 레이져로 근시와 난시를 함께 교정하기도 한다.
[출처]중앙건강백과


난시란?
  난시란 모든 방향의 굴절력이 일정치 않고 눈의 경선에 따라 차이가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평행 광선이 한 점으로 맺히지 않고, 두 점 혹은 그 이상의 초점을 갖는 상태를 난시라 합니다.
난시는 왜 생기나요?/ 난시의 증상은?
  각막의 커브의 정도가 방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난시인 정난시와 눈의 염증이나 상처 등이 원인이 되어 각막의 표면이 울퉁불퉁해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부정난시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정난시는 주로 각막의 만곡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며, 선명한 선과 흐린 선이 항상 직각관계를 유지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정상인에서도 상하의 눈꺼풀이 각막을 상하로 눌러주게 되어 생리적 난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부정난시는 각막반흔, 원추각막, 백내장초기, 원추수정체 등의 증상이 있을 경우에 나타나며, 그 밖에 각막이식수술 후에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눈알 옆을 손끝으로 약간 누르고 볼 때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흐트려져 보입니다.

이런 현상은 난시가 생긴 때문인 것으로 시력표의 난시표를 보면 어느쪽 줄은 선명하지만 90도의 직각에 있는 줄은 흐립니다. 이렇듯 직각관계로 한 줄은 선명하고 한 줄은 흐린 줄이 나타나는 증상이면 정난시, 그렇지 않고 선명한 선과 흐린 선이 혼돈되어 나타나면 부정난시입니다.
난시는 어떻게 치료하나요?
  (1) 정난시 : 원주렌즈의 안경으로 교정합니다. 먼저 근시나 원시에 대하여 구면렌즈로 교정한 후 필요한 난시도를 원주렌즈로 교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도의 근시나 원시가 있는 환자에게는 난시교정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2) 부정난시 : 눈의 염증이나 상처 등이 원인이 되어 각막의 표면이 울퉁불퉁해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완전히 교정하려면 콘택트 렌즈를 사용합니다.그밖에 난시를 수술로서 교정할 수도 있는데, 그 방법으로는 다이아몬드 칼로서 각막 주변을 횡절개(루이즈법)한다든가 또는 엑시머 레이져로 근시와 난시를 함께 교정하기도 합니다.
생활 가이드
  예방: 난시의 발생을 예방하는 길은 없으며 다만 부정난시의 원인이 되는 각막질환에 걸리지 않도록 하고, 또 각막이식이나 각막 수술 시에는 수술 후 난시를 방지하기 위하여 각막 만곡계를 사용한 계측과 조절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궁금해요 (FAQ)
  Q : 시력검사표를 이용해서 난시 검사를 할 수 있는지요?
A : 난시는 그 옆에 있는 부채꼴모양의 선들을 이용해서 하실 수 있습니다. 선의 굵기가 다르게 보이면 난시가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난시를 교정하고 나서 보게 되면 선의 굵기가 비슷하게 됩니다.


출처: 건강샘 healthkorea
http://www.healthkorea.net/HealthInfo/?kspid=HI000299&disease=271


난시 교정법1

① 철사 옷걸이를 둥글게 만들고 거기에 2.5Cm 폭으로 된 밝은 색 테이프 12개를 똑같은 간격으로 감는다.

② 둥근 테를 얼굴에서 25Cm 떨어지게 하고, 눈높이 정도에 위치시킨다. 그리고 감은 테이프를 따라서 시계 방향으로 눈길을 움직여 간다. 둥근 테를 눈길로 따라가되 3번 행한다.

③ 그리고 나서 눈을 감고, 테이프를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올린다. 역시 3번 행한다.

④ 이상과 같은 방법을 시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되풀이한다.

 


난시 교정법2

① 자를 준비하여 빨간 크레파스로 2.5Cm간격으로 굵고 빨간 선을 표시한다.

② 팔을 뻗어서 자를 눈높이에서 수평으로 위치시킨다.

③ 빨간 표시에서 표시로, 눈길을 몇 번 왔다갔다하게 한다.

④ 눈을 감고 빨간 표시들을 머릿속에서 생각해 낸다.

⑤ 눈을 뜨고 이번에는 눈이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자를 왼쪽으로 움직이고, 눈이 왼쪽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자를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이렇게 하면 착각 때문에 자의 움직임이 빨라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⑥ 다음에는 자가 수직으로 되도록 세워 잡는다. 눈을 뜨고 빨간 표시를 보면서, 머리를 천천히 위 아래로 움직인다. 머리가 위로 움직이고 있을 때 자를 아래로 움직이고, 머리가 아래로 움직이고 있을 때 자를 위로 움직인다. 반복하여 행한다. 다른 모든 훈련과 마찬가지로 때때로 눈의 초점을 바꿔서 행하는 것이 요령이다.


본 자료는 '하남출판사'의 [눈이 점점좋아지는 책]에서 발췌하였습니다.



피로회복 및 난시 등에 좋은 시축(視軸) 교정법


1) 효능

 피로 회복, 좌우의 눈을(난시(亂視)등에) 균등하게 하는 것 등.


2) 방법

 ① 먼저 앞쪽에 어떤 한 점을 정하고, 이곳을 두 눈으로 뚫어지게 봅니다. 점은 작을수록 좋습니다.

 ② 다음에 한쪽 손의 집게손가락 또는 연필이나 막대를 눈 앞쪽에 대면 손가락은 두 개로 보일 것입니다.

 ③ 그러면 보고 있는 점을 두 개로 보이는 손가락의 한가운데로 오게 하고, 이것을 뚫어지게 보면서 손가락을 재빨리 앞뒤로 이동(移動)시키는데. 그 한 점이 바로 두 개의 손가락의 중앙(中央)에 위치하도록 합니다.

 ④ 이 방법을 1~2분간 계속하면, 일시적이지만 시축이 같아져서 눈의 피로가 풀리고, 코 및 눈에 관련되는 질환(疾患)을 점점 좋아지게 돌릴 수 있습니다. 단 근본요법으로는 두 다리를 같게 하는 요법과 발목을 돌려 부드럽게 하는 일 등이 필요합니다.

 ⑤ 응시점(凝視点)을 두 개의 손가락 중앙에 낀 위치를 유지하면서, 한쪽 눈을 번갈아 감고 쳐다보면, 앞쪽의 점이 좌우로 이동하는데, 그 이동이 심하게 나타는 눈이 다른 눈보다도 건강합니다.


출처 :자연요법 사랑지기 원문보기 글쓴이 : 연구원장

원문

1570

한 남자가 주눅 든 채 무대에 서 있다.
올해 36세인 영국 웨일즈 출신의
휴대폰 세일즈맨 폴 포츠(Paul Potts).
평균에 못 미친다고 생각되는 외모에
고르지 못한 치아, 자신감 없는 말투,
불룩하게 나온 배를 가진 전형적인 아저씨 스타일.
게다가 언제 다렸는지 모를 낡은 옷을 입고 있다.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
프로그램의 녹화 현장.
한 남자가 주눅 든 채 무대에 서 있다.
심사위원들은 단지 진행을 위해 형식적으로 묻는다.
"어떤 것을 하실 건가요?"
"오페라를 부를 겁니다."
심사위원들과 방청객들의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뒤로 하고 폴 포츠의 노래가 시작된다.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시작된 아리아가
좌중을 압도하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절정에 이르렀을 때
펜대를 씹으며, 혹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비웃음 섞인 표정으로 무성의하게 지켜보던
심사위원들의 태도가 급변하기 시작한다.
"눈을 확 뜨게 만드는 신선한 공기 같네요."
"석탄 속에서 우리는 다이아몬드를 발견했습니다."
독설가로 유명한 심사위원들의 입에서 터지는
놀라운 심사평! 찬사! 찬사!
노래는커녕 말도 잘 못할 것 같던
이 기대 이하의 출연자는 1,350만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감동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부인과 함께 평범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고 있던 그는 언제나 오페라를 부르는
성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지만
호감이 가지 않는 외모와 자신감 없는 태도로
번번이 무시를 당해야 했다.
또한 운이 없었던 그는 2003년에 맹장염으로 입원했다가
양성 종양이 발견돼 장기간 입원을 해야 했고,
같은 해 자전거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쇄골이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어
2년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쇄골 골절로 성대를 다쳐서 다시는 노래를
부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입원으로 5천만 원 정도의 빚까지 지게 된 그는
휴대전화 판매원으로 일하면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출연해
예상을 깨고 인간승리 같은 우승을 차지하며
화제의 인물이 된 것이다.
그가 낸 오페라 앨범은 영국에서는
대형 음반 매장에서부터 작은 가게에 이르기까지
팬들의 주문이 쇄도해 3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콤플렉스는 품고 있으면 독이 되지만
극복하면 좋은 약이 됩니다.
인생의 반전을 원하세요?
자신을 믿고 콤플렉스 따위는 벗어버리세요. - 새벽편지 -

폴 포츠 예선 동영상.

원글

주말에 가끔 상현군을 어린이집 친구들과 놀게 할때가 있다. 그럴때 보면 내가 열심히 놀아 주는것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고 할까.? 그런 느낌을 받는다. "애들은 애들끼리 놀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직은 학원을 보낼나이는 아니지만 만약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다면 상현이는 엄마나 아빠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놀아야 한다.

어른들을 사람으로 아이를 감싸지만, 이미 체력적인 측면이나 굳어버린 감성에서 상현이의 적절한 놀이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세월이 지나 초등학교가 되면 학교가 끝난후 집으로 그냥 오라고 할것인가.?

한 선배의 얘기가 기억난다. 초등학교 다니는 자녀가 있는데 학원을 잘 안보낸다고 한다. 이 녀석의 생활패턴은 학교가 끝나면 집에와서 책이나 TV를 보다가 저녁 8시쯤 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서 9시넘어서 들어온단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친구들 학원끝나는 시간이 8시쯤 된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건 맞다. 하지만 또래들끼리 어울리는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일이 아닐까.? 선진국의 교육환경이 좋은 이유는 물론 지원을 잘해주기도 하겠지만 그 나이때에 그 또래끼리 잘 어울릴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부모가 도와줄수 없는 부분, 이 부분이 나의 고민이다.


우리나라 교육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제는 부모가 아이들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 자녀의 장점과 단점은 어떤 것인지? 자녀가 현재 발달하고 있는 능력은 어떤 것인지 관찰하고 알아가는 부모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그 시간에 아이들이 무엇을 해요?"
라거나 ....
"학원에 가지 않으면 아이들이 친구를 사귈 수가 없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학부모라면 자신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 사람들은 자기 자녀를 학원 강사나 친구들이 길러주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기르고 있는 것인가?
결국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육부도, 학교들도, 선생들도, 사회도 아닌 학부모 자신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교육의 질은 다른 것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교육의 큰 틀은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관찰하고 설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은 아이의 교육을 학교나 학원, 또는 과외강사가 모두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학원에 다니면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학생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능력상실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라는 옛 성인들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기 이전에 아이들에게 학원이 필요한지를 먼저 챙겨야 한다.
    저학년부터 학원이 필요한 아이들은 사실 각 과목당 열에 하나 정도일 뿐이다.
    학원이 필요한 아이들의 대부분은 정말 부족한 아이이고....
    일부 소수의 뛰어난 아이들만이 학원을 필요로 할 뿐이다.
다음 글에서는 정부의 교육정
에 대한 글을 작성하게 될 것 같다.

  1. 어떤 분은 이러한 현상을 돈을 보는 시각의 변화에 의해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해석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부자였을 때는 돈에 집착하여 돈이 떠나게 만들고, 가난해진 뒤에는 돈에 초연해지기 때문에(지킬 돈이 없어서 초연해지는 것이죠.) 다시금 돈이 찾아오도록 만들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본문으로]

원글 : http://ecs.gseshop.co.kr/blog/340

누군가 나에게 맡겨놓은 코드
자기가 직접 짜지 않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코드
많은 의문의 그림자와 중압감을 내포한 코드
얽히고 설킨, 아둔하게 짜놓은, 갈아엎고 싶지만 그럴 자신이 안 생기는 코드
기능이라도 하나 추가할라치면 몇일 밤을 새게 만드는 코드
도저히 손댈 수 없어서 팀에서 누구라도 나서지 않는 코드
손대면 손댈수록 나락으로 빠져버리는 코드
차라리 날 죽여줘 라고 절규하게 만드는 코드
개선한다는 생각 자체에 몸서리 치게 만드는 코드
윗글은 이책에서 나왔다고 하는군요. 책의 제목이 Working Effectively with Legacy Code 이다. 효과적으로 레거시 코드를 다루기 위한 첫번째가 레거시 코드가 저런것을 인식해야 한다는것이지.ㅋㅋㅋ;

안고 간다는건 인생이나 코드나 마찬가지로 힘든것 같다. "차라리 새로 짜고 말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모든것을 새로 시작할수는 없는법.

이것역시 즐거운 도전중의 하나인것을.